일시: 2003년 7월 13일
날씨: 비(집중호우)
참석자: 김정곤 유충섭 김기성 이주식 박형구 김상구
아침 7시 눈은 떳으나 어제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에서 2~30년에 만난 친구들, 특히 여자친구들과 밤늦도록 노닐다가 새벽녘에 잠들어서 인지 아직까지 머리가 띵하다. 창밖을 보니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것 같아 얼른 미숫가루 한잔 먹고 1층으로 내려오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욱수골 입구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이런 폭우에 무슨 등산, 다시 집으로 왔으나 몸이 근질근질 하여 계단 오르기 몇 번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대폰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조금 있으니까 회장님의 호출전화, 다시 차를 타고 욱수골 입구에 도착하니, 오이~잉 자주 안나오던 회원들이 보인다. 산행참석 횟수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나? 아무튼 간에 너무 반갑다.
계속 장대비는 내리고 산행 코스는 어떻게 잡을까? 계곡물은 위험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안전하게 옥산동 장산 중학교 능선을 타고 성암산 정상에서 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하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산행길은 계속내린 비로 계곡처럼 되어 있다. 여기저기 폭풍우에 넘어진 나무들, 조금은 겁이 난다. 중턱에 올라서니 간간히 산행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빗줄기도 가늘어지는 느낌이다. 안개가 솟아오르는 사이로 넝쿨에 감겨진 키 큰 나무들, 한폭의 그림 같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야속한 듯 하다. 몇 구비 능선을 넘어서니 정상 200m 이정표가 보인다. 신발은 벌써 빗물이 가득 고여 있고 옷도 서서히 젖어 온다. 10시 드디어 정상에 도착, 자욱한 안개로 주변 경치는 볼 수가 없다. 그래도 폭우 사이로 내가 왔노라고 고함 한번 질러본다. 2시간쯤 더 산행하기로 하고 능선을 타고 진밭골 방면으로 향했다. 키 높이만큼 자란 억새풀을 해치고 가자니 옷은 다 젖어 버리고 몸은 따끔거린다. 빗물에 만들어진 웅덩이 속의 비단개구리는 인기척에 놀라 뛰어가고, 나는 뱀인가 해서 간이 콩알만 해 진다. 양 옆으로 길게 가지런히 푸르럼을 뽐내는 소나무, 태양만 살짝 비춰 준다면 환상일 텐데, 새들은 다 어디로 대피 했는지 계곡의 거센 물소리만 귀전을 울린다. 1시간 쯤 숲을 해치고 지나가니 ‘박씨 문중 제실’입구가 보인다. 회원들의 얼굴은 빗물에 젖어 새악시의 수줍은 볼 마냥 발그레 하다. 그러나 하산을 했으면 하는 마음인 듯 조금은 피곤한 기색들이다. 12시 쯤 하산완료 목표로 능선 하나를 더 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니, ‘아까 전에 마지막 오르막이라 카디마는’ 하며 불평들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 오랜만에 나온 회원들 어디 혼 좀 나봐라, 히히’. 능선에 올라서니 빗줄기도 다시 거세지고 다들 하산해서면 하는 눈치이고 좀 불쌍해 보인다. 큰 인심한번 쓰는 척하고 ‘박씨 제실’ 있는 방면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박씨 문중 제실’에는 여주에서 온 귀인(순전히 자기말로)이 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 ‘쉬었다 가라’, ‘ 몸이 영 부실하다’는 등 말을 걸고는 차와 음료수를 팔려고 한다. 회원들에게 절대 눈길을 주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하산을 재촉했다. 회원들은 빨리 하산한다고 좋아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계곡을 몇 개 건너야 하는데 마지막 계곡은 급류이고 바로 밑에 저수지가 있어 위험하다. 급경사길 옆에는 계곡마다 물길이 나있고 건너편 절벽에는 긴 폭포수가 내리고 있어 장관이다. 두개의 계곡은 쉽게 건너고 드디어 마지막 계곡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되로 물살은 우리를 삼키려는 듯 소용돌이를 만들며 위협하고 있다. 건너보려고 발을 넣어 보니 금방이라도 빨려 들것 같다. 다 같이 팔을 끼고 건너보려고 시도 했으나 무리였다. 할 수 없이 밭둑을 따라 올라가다가 물길이 줄어드는 곳을 찾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정글 같은 가시넝쿨을 해치고 올라갔으나 물줄기는 더욱 거세게 솟아지고 있다. 계속 올라가면 조그마한 다리가 있다. 우왕좌왕하는 회원들을 안심시키고 보니, 김기성회원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고함쳐 불러 보아도 힘찬 물소리 뿐 응답이 없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회원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역력하다. 일단 회원들을 인솔하여 한참을 전진하니 드디어 다리가 보인다. 아직까지 다리는 물이 잠기지 않아 안전하게 건널 수가 있었다. 김정곤 회장님을 남겨두고 길을 따라 고함을 치며 달려갔다. 안전하게 대피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별별 불길한 생각이 다 든다. 미친 듯이 뛰어내려가다 보니 김기성회원이 물길을 따라 허우적거리며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찾았다” 함성을 지르며 계곡가까이로 달려가 계곡위로 올라가라고 고함쳤다. 계곡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급류라 위험하다. 손짓 발짓하여 겨우 계곡위로 올려 보내고 나니 맥이 좍 풀린다. 박형구 회원에게 계속 안내하도록 조치하고 김정곤 회장님에게로 달려갔다. 찾았노라고 이야기하고 회장님 얼굴을 보니 누렇게 변해 있다. 드디어 김기성회원이 무사히 다리를 건넜다. 가지고 온 우산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다. 뒤에 따라 오다가 혼자 건너보려고 했단다. 앞으로 산행시 절대로 개인행동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하산을 시작 했다.
하산 완료 후 보신탕집에서 소주를 마시니 술이 아니라 완전히 사이다다. 모두들 무사히 산행함을 자축하니, 술 또한 급류를 타듯 온 몸을 휘감는다.
오늘 회원들의 얼굴은 완전히 카멜레온이다. 검은색, 누런색,파란색, 하얀색, 빨간색 시시각각으로 잘도 변한다. 빨리 장마가 그치고 푸른하늘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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