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3.10.19 04:20-19:45
종주구간
소청산장-소청봉-희운각-무너미고개-공룡 신선봉-1275봉-마등령-
저항령- 황철봉-미시령
<설악운무>
눈을 떴을때 새벽4시.....
일행은 어제 오후 한계령으로 되돌아 갔다.
썰렁한 기상에 괜히 혼자남았다는 후회와 두려움이 앞섰다.
공룡능선-미시령 구간은 초행이다.
그래도 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는 짐을 챙기다 말고,
혹시나 어둠 저켠어디서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행을 찾아 보았지만...
모두들 정말 가버린 모양이다.
밖을 나서자 바람이 찼다.
온도계는 영상 5도....날씨 쾌청...
소청을 올라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에서
몇번씩이나 발을 헛디뎌 등에선 땀이 났다.
아직 사람들은 다니지 않는다.
손전등을 이곳 저곳 비추며 조심스럽게 희운각으로 향한다.
5시20분에 희운각에 도착하였다.
휴게소 매점은 불은 켜 두었지만,
산장 직원은 책상에 코를 박고 자고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려 커피랑 컵라면 하나를 사서,
빈 식탁위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공룡은 아무래도 날이 밝으면 들어가야겠다.
죽음의 계곡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시리다 못해 저려온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버너랑 코펠을 차에두고 온것이 후회된다.
일행이 챙겨 오길래 슬그머니 빼두었는데...오늘은 밥구경하기는 글렀다.
대신 보온병에 뜨거운 물도 채우고,
라면2개 육포 귤두개 양갱 초코렛 사탕 미숫가루를 꼼꼼히 챙겼다.
6시20분....날이 밝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공룡간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대청으로만 발길을 옮길뿐...
더는 기다릴수 없어 신발끈을 묶고,스틱끈을 조이고 무너미고개로 출발....
공룡 초입에 경고판이 서있었다.
단독산행,악천후,등산로 이탈을 경고하고 있었다.
신선봉까지 오르는데 20여분이 흘렀을까...
서서히 공룡의 전모가 드러나며,
깍아지른 단애의 석상들이 발아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발 1200-1400 고지를 200미터 정도의 표고차로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공룡이 위험하진 않았다.
몇번의 트레바스나 슬라브가 직벽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바위를 무리하게 오른다던가, 트레일을 이탈하지 않는다면,
큰 위험은 없었다.
그러나 숨조차 쉴수 없는 공룡의 비경에,
오길 잘했다는 위안으로 삼을즈음 후미에 사람들 소리도 나고,
건너편에도 사람들이 내려 오는것이 보였다.
여행이 즐거워 지는 순간이다.
<경고판은 혼자가는 객을 괜히 쫄게 만든다>
<공룡능선>
<티라노의 발톱>
티라노의 발톱을 지나 다시 200여미터를 빠져버리는
엣지가 나타났다.
짐을 벗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절벽 중간에 동판이 박혀 있다.
누구의 추모비인듯 하다.
나는 절벽을 조심스레 기어 동판 곁으로 갔다.
동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해도 없는 얼굴이여
산을 너머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우리 어찌 잊으랴
1986년 8월 16일 친우일동>
<레드스톤 -티라노의 송곳니->
<1275봉 북면 단애>
<공룡능선을 빠져 나오며>
구미에서 온 탐방객 일행들과 함께 공룡 마지막 구간을 함께 갔다.
릿지가있어 배낭을 던지거나 테이프 슬링으로 매달아 올리기도하고.
아줌마 (아가씨도 많았는데
유독 한 아줌마만 내게 헬프! 헬프! 한다 ㅠㅠ)
엉덩이를 덜어 올려 주기도 하며,
11시가 넘어서야 공룡을 빠져 나온다.
마등령에 도착한것은 12시10분 설악산 등산오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금강문을 지나 비선대 설악동으로 빠지는길과
좌측으로 사미소를지나,
백담계곡으로 빠지는 길만 표지에 있을뿐,
어디에도 저항령-황철봉-미시령 표지는 없었다.
다만 북쪽으로 대간 띠지만 어지러이 걸려 있어
그곳이 대간길임을 알려 주기만 할뿐이다.
이곳에서 라면 두개를 버너와 코펠을 빌려 점심을 해결했다.
세끼를 내리 라면만 먹으니 속이 니글거려 국물만 먹고 버린다.
그러나 어쩔수 없다. 지금 이순간 자장면,황도 통조림,불갈비...
먹고싶은 음식이 꿰미에 치렁치렁 매달 만큼 많기도 하지만,
칫솔마져 반토막을 가지고오는 마당에
다만 그림의 떡일 뿐 인것이다.
산의 매력은
내가 할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 상황의 긴박감과 한계상황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희열로 다가오곤 한다.
내가 무기력하다고 느낄때
일상의 무기력은 반의적으로 가치를 발한다.
물 한방울이 그렇게 달디단 생명이라고 일상에서는 느낄수 없듯이 말이다.
<마등령 독수리>
아줌마 덕에 물도 실컥 얻어먹고
과일도 한개 챙겨서 내자리로 왔다.
비선대로 같이 내려가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혼자서 금단의 선을 넘는다.
그랬다.
그 금단의 선을 넘은 이후로,
나는 정말 엄청난 도박을 하고야 말았다.
마등령을 넘어서자 너들지대
(엄청난 돌무더기...내 생애 통털어 보았을까말까하는 돌덩어리를
그날 오후 다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인적이 끊긴 적막강산에
바람만 세차게 불고 있다.
어디선가 까마귀 떼들이 나타나 낮은 하늘위에서
음산하게 울고 있던 그 돌무더기 밭에서
조바심이나서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한다.
<황철봉 암산>
4시간 그랬다...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 도합 4시간길이다.
지도에는 분명 2시간반(마등령-황촐봉) 1시간반(황철봉-미시령)으로 표기 해두었다.
그러나 가도가도 저항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집채만한 너들에서 벼게만한 돌의 무덤만이 끝임없이
가는길에 널려 있을뿐
지금쯤 황철봉에 도착했어야할
시간에 겨우 저항령의 엣지를 통과한다.
배가 고파오고 남은 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고,
사탕을 빨아 보지만 흰 쌀밥만이 눈에 어른 거릴뿐이다.
저항령에 다다르자 이제 진퇴양난이다.
여기서 설악동까지는 여섯시간....백담사역시 6시간...
황철봉을 넘는수밖에 없다.
<저항령이 발아래..>
시간은 벌써 4시를 넘기고 있다.
일몰까지는 두시간....어차피 홀로 야간 산행을 감수 해야 한다.
나는 뛰다시피 황철봉을 오른다.
흙길은 잠시 이어지더니 다시 시커멓게 입벌린 바위와 너들지대
힘겹게 황철봉을 오르자 이젠 방향도 잡을수 없다.
자석 성분이 센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 그런지
디지털 콤파스는 회전 목마처럼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1318봉을 가늠하여 좌측으로 빠져서 다시 급히 고도를 내려
900고지를 좌측으로 능선이 돌아 가고 있다.
마지막 물병을 비운다. 아껴두었던 2% 음료 하나를 숨도 쉬지않고
마셔버렸다.
<2% 음료수를 마지막으로 비운다>
1318봉을 우회하여 낮은구릉으로 접어 들자 이미 날은 지고 있었다.
아직도 미시령은 보이지않는데...
사막의 밤처럼 어둠은 순간적으로 내렸다.
랜턴을 켜고 바위길을 더듬는데...이제는 대간 표지마져 없다.
표지를 매달 나무가 없으니,대낮에도 독도 주의 지역이라
씌여 있는 길을 밤에 랜턴에 의지하고
찾는다는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나는 산아래까지 무조건 내려왔다.
1318봉 안부에 시커먼 숲앞에 이르러 대간 띠지를 찾는다는것은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나는 다시 나침반을 켜고 북북동 12를 좌표로 찍어 보았다.
우측이다.좀더 우측으로 가보자....
20여미터를 이동하는데 잣나무에 희뿌연 대간 표지가 보인다.
기적처럼 길을 찾았다.
그리고 그 숲속....칠흙같은 숲속....낯선길....
우측에 덤불너머로 뭔가 움직인다.
낙엽소리가 부스럭거리며 그소리....
쉰듯한 가래 끓는소리...
머라가 쭈볏 선다. 멀리서 애기 울음같은 소리...
산돼지 끄르럭 거리는소리...
잠시라도 서 있으면 그 쉰목소리가 다가온다.
걷기시작하면 내 발자욱소리에
소리가 묻히지만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 할수 있다.
혀가 말라 침을 삼키지만 침마져 말라 버렸다.
나는 제자리세서서 스틱을 힘껏 바닥에 친다.
미친넘...혼자서 뭣할라고.....
스틱 하나가 부러져 버렸다.
나는 배낭속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119에 조난 신고를 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껴둔 휴대폰 밧데리마져 다쓰버렸다.
전화를 걸면 끊겨 버린다.
이제 조난을 당할수 밖에 없는가?
내가 여기서 죽으면 누가 추모 동판을 만들어주지?
생각이 그기에 미치자 알수없는 화가 치밀었다.
다시 일어서서 스틱하나를 창처럼 꼬나들고
랜턴을 비추며 길을 찾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저 앞으로 달릴수밖에..
.다행이 너들지대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넘어진 나무등걸에 오른쪽 다리가 찢겨 졌지만 돌아볼 틈이 없다.
그렇게 어둠속을 1시간 반을 해맸을까...
작은봉우리하나를 넘자 미시령으로 올라오는
차량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시령 휴게소의 음악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먼길이지만 그소리,빛 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참으로 다행 스런것은 대낮에도 찾기 힘들 그 산길을
한번도 잃어버리지않았다는것이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지도상에 표기된거리와
시간이 2시간이나 빠져 있었다.
정상적인 탐방로가 아니어서 나타나 있지 않은것을 간과한것이다.
결국 오늘의 사건은 내가 자초한 일이고
머리나쁜놈은 손발이 고생할수밖에 ㅠㅠ..
미시령에 7시40분경에 도착했다.
막상 산비탈에서 휴게소로 나가려니 철문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막아두었다.
주위를 돌아 보았지만 나가는 길이 없어,
결국 철책을 기어올라 철문을 타넘고 임시 주차장에 세워둔 내차로 갔다.
..........상황끝.........
이제 모든게 끝이 났다.
휴게실로가서 물한모금으로 혀를 녹인다.
혀가 완전히 굳어 말을 할수 없었다.
꿀물을 한잔 마시고, 서울로 대간 종료를 알리고, 집에다 전화를 건다.
마누라와 아이의 목소리가 감동적이다.
젖은 목소리를 아는지,
집사람은 서둘지 말고 속초서 자고 내일 천천히 오랜다.
척산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내일은 가재미 회무침을 먹어야지....
천천히 미시령을 내려온다.
학사평의 순두부촌 조명이 발밑을 훤하게 비추는 미시령...
그 미시령을 다시 되돌아보며 나는 도시의 불빛으로빨려 들었다.
다시는 안갈꺼야 산에....
"정말? 산에 안가지 다시는?..."
"아니....밤에만...
밤에는 절대로 안간다고 ㅋㅋ..."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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